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0306목 그대 몸속에 꽃핀 시간을 들여다보는 시간도!
그대아침
2025.03.06
조회 206
나는 디지털시계보다 아날로그시계가 좋다.
시계 판에 숫자가 기입되는 시계보다 물시계니 해시계니 모래시계니 하는,
인위이되인위가 최소화한 형태의 시계가 좋다.
자연의 흐름과 호흡이 시간이라는 관념 속에서
비교적 자연스러운 인위로 작동하고 있을 때 인간의 시간은 아직 인간의 쪽에 있었다. 
자연의 일부로서의 인간의 시간 말이다.

두 시 정각에 봐, 라는 말보다 감나무 그림자가 종탑에 닿을 무렵에 봐, 라고 
말하는 쪽이 얼마나 더 그렁그렁한가.
말은 인간의 무의식을 이끌어 내면의 언덕을 들여다보게 하는 주술성을 지닌다.
'몇 시'라고 규정된 문법을 벗어난 모든 약속의 말들,
이를테면 첫눈 올 때라든지 사과꽃 필 때라든지 점심 먹고 
한 식경쯤 후에라든지 하는 말들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의 일상에
어떤 호흡의 틈새를 만들어주는 것이어서
약속의 결과를 떠나 그러한 시간의 약속만으로도 살아있는 것들의 물기에 훨씬 가까워진다.

나는 또 상상한다.
잠시 후에 봐, 라고 헤어진 이들이 머리가 희끗한 노년이 되어
정말 '잠시 후에' 만난 것처럼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고 장난을 치고 
농담을 나눌 수 있는 세상이 가능하다면, 세상은 훨씬 평화로워지지 않을까. 
인생은 어떤 면에서 모두 '잠시'다.
한 시 정각, 두 시 정각, 몇 시까지라는 숫자의 정각에 포섭되어
날카로워지는 신경세포에 '백리향 피는 계절' 혹은 
'수련이 열리는 아침'이라는 꽃의 뉴런을 매달아줄 수 있다면
우리는 훨씬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잠에서 깨어나는 시간부터 우리는 거의 매일 시간에 쫓기며 허덕인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죽은 시간이 아니라 스스로 만끽하는 살아있는 시간이다.
자신의, 우리 몸속에 꽃핀 시계를 들여다보아야 할 시간, 
심장 박동 속에서 부드럽게 휘어지는 나이테의 시침을 만져보아야 할 시간. 
때때로, 가능한 종종, 차고 있는 손목시계의 건전지를 빼놓아야 할 시간이 필요하다.

*김선우의 <김선우의 사물들>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