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디지털시계보다 아날로그시계가 좋다.
시계 판에 숫자가 기입되는 시계보다 물시계니 해시계니 모래시계니 하는,
인위이되인위가 최소화한 형태의 시계가 좋다.
자연의 흐름과 호흡이 시간이라는 관념 속에서
비교적 자연스러운 인위로 작동하고 있을 때 인간의 시간은 아직 인간의 쪽에 있었다.
자연의 일부로서의 인간의 시간 말이다.
두 시 정각에 봐, 라는 말보다 감나무 그림자가 종탑에 닿을 무렵에 봐, 라고
말하는 쪽이 얼마나 더 그렁그렁한가.
말은 인간의 무의식을 이끌어 내면의 언덕을 들여다보게 하는 주술성을 지닌다.
'몇 시'라고 규정된 문법을 벗어난 모든 약속의 말들,
이를테면 첫눈 올 때라든지 사과꽃 필 때라든지 점심 먹고
한 식경쯤 후에라든지 하는 말들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의 일상에
어떤 호흡의 틈새를 만들어주는 것이어서
약속의 결과를 떠나 그러한 시간의 약속만으로도 살아있는 것들의 물기에 훨씬 가까워진다.
나는 또 상상한다.
잠시 후에 봐, 라고 헤어진 이들이 머리가 희끗한 노년이 되어
정말 '잠시 후에' 만난 것처럼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고 장난을 치고
농담을 나눌 수 있는 세상이 가능하다면, 세상은 훨씬 평화로워지지 않을까.
인생은 어떤 면에서 모두 '잠시'다.
한 시 정각, 두 시 정각, 몇 시까지라는 숫자의 정각에 포섭되어
날카로워지는 신경세포에 '백리향 피는 계절' 혹은
'수련이 열리는 아침'이라는 꽃의 뉴런을 매달아줄 수 있다면
우리는 훨씬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잠에서 깨어나는 시간부터 우리는 거의 매일 시간에 쫓기며 허덕인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죽은 시간이 아니라 스스로 만끽하는 살아있는 시간이다.
자신의, 우리 몸속에 꽃핀 시계를 들여다보아야 할 시간,
심장 박동 속에서 부드럽게 휘어지는 나이테의 시침을 만져보아야 할 시간.
때때로, 가능한 종종, 차고 있는 손목시계의 건전지를 빼놓아야 할 시간이 필요하다.
*김선우의 <김선우의 사물들>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