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소풍을 많이 다니겠노라, 호기롭게 한 다짐은 지키기 어렵게 됐다.
미세먼지 탓이다. 괜찮은가 했더니 오늘 다시 미세먼지가 '매우 나쁨' 수준이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소득이 없어 시무룩해진 도둑처럼 집밖으로 나온다.
슈퍼에 들어가 과일을 살펴본다. 좀 비싸다. 싸고도 실한 과일은 없나?
두리번거리는데 가게 주인의 말.
"애기 엄마, 오늘 딸기 세일이에요."
태연하게 과일을 고르는 척하지만 당황한다.
딸기 쪽은 아예 보지 않는 것으로 소심하게 불만을 내비친다.
내가 어딜 봐서 아기엄마야? 불만을 가지려다 그만둔다.
아이는 없지만 있다 해도 하나도 이상할 게 없는 나이다.
미처 깨닫지 못한 내 모습, 나만 모르는 나, 그런 건 항상 남이 깨우쳐준다.
구미가 당기는 과일이 없어 도로 나온다. 어깨엔 도서관에 반납할 책이 한 짐이다.
아직 도서관에 갈 마음이 없다. 마스크 안에서 호흡을 쌕쌕이며 전진한다.
개나리, 진달래, 목련, 벚꽃 순으로 피어난 꽃들.
아직 꽃피지 않은 벚나무가 더 많지만 머지않아 죄다 필 것이다.
어쩌지? 저것들이 다 피면 어쩌나? 어쩌긴 뭘 어쩐단 말인가!
아아, 감탄하겠지.
꽃이 우르르 피어나면 그 황홀함을 감당하지 못할까봐,
좋으면서도 조바심치는 건 내 취미다. 목련나무 앞에 멈춰 선다.
겨우내 이 나무가 목련나무인 줄 모르고 지나다녔다.
언제 이 뾰족하고 부드러운 것이 돋아난 걸까?
아직 도서관에 갈 마음이 없다. 동네 카페 '식물도감'에 들어간다.
커피맛과 주인 마음씨가 일품인 곳이다.
커피를 주문하고 주인 아주머니와 수다를 떨면서,
새로 들어온 봄옷과 리넨 소품을 구경한다. 살 마음은 없었는데
짙은 초록색 리넨 셔츠와 행주를 사기로 한다.
커피와 새로 산 셔츠와 책 보따리를 끌어안고 도서관으로 향한다.
목련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개나리도 개나리대로 하루치 봄을 사는 중이다. 오늘은 내 하루치 봄날이다.
*박연준의 <모월모일>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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